화성학연구소 연구위원
| 부서 | 성명 | 소속 및 직위 | 담당 분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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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형 위원 | 서울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사 | 학술·향토문화 분야 |
제3장 마을이름 제3절 마도면(麻道面)
카테고리
화성의 지명유래
작성자
화성문화원
작성일
2025-04-11
조회
148
제3절 마도면(麻道面)
본래 남양군의 지역으로 마도면(麻道面)이라 하며 송치(松峙), 쌍봉(雙峯), 상원(上圓), 청산(靑山), 해문(海門), 백곡(白谷), 금당(錦堂), 고모(古毛), 슬항(瑟項)의 9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2월 13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북부(北部) 쌍수리면(雙守里面)의 송정(松亭), 중리(中里), 석교동(石橋)의 3개 동리를 병합하여 수원군에 편입되어 송정, 두곡, 석교, 쌍송, 청원, 해문, 백석, 금당, 고모, 슬항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되었다. 1956년 8월 20일 석교리로 면사무소를 이전하였고 이해 12월 25일 행정구역 개편 때 21개리로, 1982년 4월 1일 13개 법정리와 22개 행정리로 개편되었으며 현재는 10개 법정리와 24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동쪽은 남양동, 남쪽은 바다 건너 우정면, 서쪽은 서신면, 북쪽은 송산면에 닿는다. 본면은 중국사신이 삼베옷을 입고, 이 지역을 지나갔다는 유래에서 삼(麻)자와 길(道)자를 따서 마도면이라 칭하였다.
1. 고모리(古毛里)〔공굴, 고무굴, 고모동〕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곰처럼 생겼으므로 곰굴, 고무굴이라 했고 또는 마을지형이 어린송아지가 어미소를 돌아보는 형국이라고 하여 고모리(顧母里)로 불리다가 고모리(古母里)로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고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1914년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아랫고모 : 고무굴의 아래쪽 마을이다.
2. 금당리(錦堂里)〔금당골, 금당, 금당곡, 금달〕

[사진-35. 금당 1리 소곡마을 입구 ]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으로서 이곳에 산제당(山祭堂)이 있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또는 고려시대부터 부자가 많아 가옥을 화려하게 짓고 살던 곳이라 하여 금당리 또는 금당곡, 금달이라 하였는데 1914년 소곶이를 병합하여 금당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대촌(大村) : 금당골 동쪽에 있는 큰 마을이다.
○ 소고지〔소곡리(蘇谷里), 소곶(蘇串)〕 : 금당리에 있는 마을로 곶으로 되어 있다. 산천이 수려하고 인간은 재질이 풍부하며 장수하여 경생소생하므로 소곶(蘇串)이라 칭하게 되었다.
3. 두곡리(斗谷里)〔두일〕
본래 남양군 쌍수리면의 지역으로서 뒷산의 깊은 골짜기가 2개 있어서 두골(二谷), 두일 또는 두곡, 두푸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지편, 쉰돌, 중리(中里), 되룡골, 고잔말을 병합하여 말두(斗)자로 개명하고 두곡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 되었다.
○ 고잔말 : 두곡리에 있는 마을로 곶으로 되어 있다.
○ 구리골(구리곡) : 두곡리에 있는 마을이다.
○ 되롱골 : 두곡리에 있는 마을이다.
○ 배실 : 두곡리에 있는 마을이다.
○ 쉰돌 : 두곡리에 있는 마을로 흰 돌이 있었다고 한다.
○ 양지편(陽地便) : 두일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다.
○ 윗구리골 : 구리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 중리(中里)〔중리동〕 : 두일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두곡과 송정리 중간이 된다.
4. 백곡리(白谷里)

[사진-36. 백곡교와 백곡리 마을 전경 ]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인데 마을을 둘러싼 청룡산(靑龍山) 줄기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가 99개가 되어 1백 개에서 1개가 모자라 ‘백(百)에서 한 획을 뺀 흰백(白)자를 써서 백곡리(白谷里)로 불렸다고 한다. 1914년 향기실, 이피굴, 구리개를 병합하여 백곡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구로현(九老峴)〔구리개〕 : 행기실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이 곳은 큰 가뭄이 없어 90세 이상 장수하는 노인이 아홉분 사셨다하여 구노현(九老峴)이라 칭하였는데, 부르기가 쉽게 구리개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90세 이상 장수하는 분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37. 이피골 마을 전경 ]
○ 독고리골 : 백곡리에 있는 마을이다.
○ 이태굴〔이피굴, 입표곡(立表谷), 입표동, 입피굴〕 : 행기실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는 배가 드나들어서 배를 매는 표석이 있었다고 한다.
○ 향기실(香氣室)〔행기실〕 : 백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백화초목을 다량 식재하여 향기와 열매가 많다는 뜻에서 향기실(香氣室)이라고 칭한다.
5. 석교리(石橋里)〔돌다리〕

[사진-38. 석교리 전경 ]
본래 남양군 쌍수리면의 지역으로서 도로가 개설되기 전 바다와 접했던 곳으로 수백년이 지나는 동안 파도에 암석이 깎여 자연적으로 돌로 된 다리가 형성되어 돌다리 또는 석교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방죽머리, 벗말, 무한이, 역말(驛石), 마리실(馬里實)을 병합하여 석교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마리실(馬里實) : 역말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평야지대의 안쪽에 위치한 부락이므로 원래는 안말이라 칭하였으며 약400여년 전 말이 우리를 뛰쳐나가서 주민이 식수로 이용하는 큰 우물에서 물을 먹다가 우물에 빠져죽었으므로 주민들이 분개하여 우물을 매몰하였다 하여 마리실로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본 동리에는 성씨(成氏)가 집거하여 주로 축마하였는데 그 우물을 매물하였더니 점차 성씨(成氏)가 패망하였다는 전설에 의하여 마리실로 칭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사진-39. 마리실 마을 전경 ]
○ 무안이(무한이) : 석교리에 있는 마을이다.
○ 방죽머리 : 돌다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슬한간 바다를 메워 제방을 쌓은 후 제방이 머리부분에 위치한 부락이라 하여 방죽머리라 불리어지고 있다.
○ 범굴 : 석교리에 있는 골짜기로 범이 살았다고 한다.
○ 벗말 : 돌다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염전이 있었다.
○ 보십재 : 석교리에 있는 산으로 보십(보습)처럼 생겼다.
○ 불당(佛堂)골 : 석교리에 있는 골짜기로 불당이 있었다.
○ 사령바위 : 석교리에 있는 바위이다.
○ 십오염전(十五鹽田) : 형무소염전 옆에 있는 염전으로 15명이 계를 모아 만들었다고 전한다.
○ 역말〔역석〕: 돌다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역참이 있었다. 중국사신 및 파병역군이 왕래할 때 말을 대기하였다가 다음 역으로 타고 가는 것으로부터 역석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 형무소염전 : 마도염전 북쪽에 있었던 염전이다.

[사진-40. 역말 마을 전경 ]
6. 송정리(松亭里)〔하일(荷日), 송정〕

[사진-41. 송정 2리 범죄 없는 마을(1991)]
본래 남양군 쌍수리면의 지역으로서 하일 또는 소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송정이라 하였는데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박촌(朴村), 법동(法洞)을 병합하여 송정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박촌(朴村) : 송정리에 있는 마을로 박씨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 법동(法洞) : 하일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홍씨들이 집단으로 살아서 홍씨 가문에서 학자와 고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법이 필요 없을 정도로 법을 잘 지켜온 마을이라 하여 법동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송정 2리는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되어 10년이나 지속되고 있다.
○ 하일(荷日) : 산맥이 연화같이 생겼다 하여 하일이라 칭하여졌다고 한다.
○ 아래하일 : 하일의 아랫마을이다.
7. 쌍송리(雙松里)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인데 예부터 마을 뒷산이 두 개의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어서 쌍봉동(雙峯洞)으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쌍봉동 거적리(巨積里), 송치리(松峙里), 해광동(海光洞)을 병합하여 쌍봉과 송치의 이름을 따서 쌍송리라 하여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거적리(巨積里)〔거석동(巨石洞)〕 : 쌍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약 300여년 전 이 마을에 박씨가 집단 거주하여 기와집을 많이 짓고 부유하게 살았으며, 가문에 노적가리를 쌓으면 타 부락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여 거적리라 칭하게 되었다한다.
○ 경기염전(京畿鹽田) : 쌍송리에 있는 큰 염전이다.
○ 방죽암말 : 거적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방죽이 있고, 방조제의 구축으로 동제방 내부에 위치한 데서 연유되었다.
○ 솔티〔송치〕 : 해광동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
○ 송리동(松里洞) : 거적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 쌍봉동(雙峯洞) : 거적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해광동(海光洞) : 거적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해광염전(海光鹽田) : 쌍송리에 있는 염전으로 1919년에 만들어졌다.
○ 화남염전(華南鹽田) : 경기염전 남서쪽에 있는 염전이다.
8. 슬항리(瑟項里)〔비파목, 비아목, 슬항〕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비파의 목처럼 생겼으므로 비파목, 비아목 또는 슬항이라 하였는데 1914년 절골을 병합하여 슬항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절골〔사곡(寺谷)〕 : 비아목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 곳에 큰 사찰이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큰절은 불에 타 소실되어 재건되지 못했으며 그 절터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남아있어 절골이라 부른다.
9. 청원리(靑園里)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인데, 옛부터 성(城)이 있어서 ‘성목재’라고 불려지다가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라 하여 ‘청산동(靑山洞)이라고 불려졌다. 1914년 청산동, 상원동, 송대 막산리, 수루지를 병합하여 청산과 상원의 이름을 따서 청원이라 하여 수원군에 편입되었다.
○ 막산리(幕山里)〔막산(幕山)〕 : 청원리 중앙에 있는 마을로 청원리에서 맨끝의 산밑부락이라 하여 막산리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 상원동(上園洞) : 막산리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 송대(送臺)〔송항(送項)〕 : 상원동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수 백년 전 사대부를 보내기 위해 이 곳에 성을 쌓고 성안에 누각을 짓고 환송하는 곳으로 사용한 후부터 송대라고 칭하였다 한다.
○ 수루지(水樓地) : 청산동 동쪽에 있는 방조제를 구축하기 전에는 조수가 마을까지 침수하여 유수(溜水)되었다고 한다.
○ 청산골〔청산(靑山), 청산동(靑山洞)〕 : 막산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청룡(靑龍) : 인근섬에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산모양이 청룡머리와 비슷하여 청룡이라 불리워졌다 한다
10. 해문리(海門里)〔해문, 역골, 역말, 굿벌, 해문동, 역곡, 구화〕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으로서 약500여년 전 조수를 이용하여 동리입구 산간저지대를 배편으로 출입하였다고 하여 해문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해문구화역(海門仇火驛)이 있었으므로 해문, 역말, 역골 등이라 하였는데 1914년 중간리, 꽃부리, 관굴을 병합하여 해문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관굴 : 역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꽃부리 : 중간지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쑥가지 : 제방에 쑥이 많이 나서 쑥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이웃 동네까지 나누어 먹었다하여 쑥가지라 불리워지고 있다.
○ 중간리(中間里〔중간지(中間地)〕 : 해문리 중앙에 있는 마을이다.
본래 남양군의 지역으로 마도면(麻道面)이라 하며 송치(松峙), 쌍봉(雙峯), 상원(上圓), 청산(靑山), 해문(海門), 백곡(白谷), 금당(錦堂), 고모(古毛), 슬항(瑟項)의 9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2월 13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북부(北部) 쌍수리면(雙守里面)의 송정(松亭), 중리(中里), 석교동(石橋)의 3개 동리를 병합하여 수원군에 편입되어 송정, 두곡, 석교, 쌍송, 청원, 해문, 백석, 금당, 고모, 슬항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되었다. 1956년 8월 20일 석교리로 면사무소를 이전하였고 이해 12월 25일 행정구역 개편 때 21개리로, 1982년 4월 1일 13개 법정리와 22개 행정리로 개편되었으며 현재는 10개 법정리와 24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동쪽은 남양동, 남쪽은 바다 건너 우정면, 서쪽은 서신면, 북쪽은 송산면에 닿는다. 본면은 중국사신이 삼베옷을 입고, 이 지역을 지나갔다는 유래에서 삼(麻)자와 길(道)자를 따서 마도면이라 칭하였다.
1. 고모리(古毛里)〔공굴, 고무굴, 고모동〕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곰처럼 생겼으므로 곰굴, 고무굴이라 했고 또는 마을지형이 어린송아지가 어미소를 돌아보는 형국이라고 하여 고모리(顧母里)로 불리다가 고모리(古母里)로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고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1914년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아랫고모 : 고무굴의 아래쪽 마을이다.
2. 금당리(錦堂里)〔금당골, 금당, 금당곡, 금달〕

[사진-35. 금당 1리 소곡마을 입구 ]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으로서 이곳에 산제당(山祭堂)이 있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또는 고려시대부터 부자가 많아 가옥을 화려하게 짓고 살던 곳이라 하여 금당리 또는 금당곡, 금달이라 하였는데 1914년 소곶이를 병합하여 금당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대촌(大村) : 금당골 동쪽에 있는 큰 마을이다.
○ 소고지〔소곡리(蘇谷里), 소곶(蘇串)〕 : 금당리에 있는 마을로 곶으로 되어 있다. 산천이 수려하고 인간은 재질이 풍부하며 장수하여 경생소생하므로 소곶(蘇串)이라 칭하게 되었다.
3. 두곡리(斗谷里)〔두일〕
본래 남양군 쌍수리면의 지역으로서 뒷산의 깊은 골짜기가 2개 있어서 두골(二谷), 두일 또는 두곡, 두푸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지편, 쉰돌, 중리(中里), 되룡골, 고잔말을 병합하여 말두(斗)자로 개명하고 두곡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 되었다.
○ 고잔말 : 두곡리에 있는 마을로 곶으로 되어 있다.
○ 구리골(구리곡) : 두곡리에 있는 마을이다.
○ 되롱골 : 두곡리에 있는 마을이다.
○ 배실 : 두곡리에 있는 마을이다.
○ 쉰돌 : 두곡리에 있는 마을로 흰 돌이 있었다고 한다.
○ 양지편(陽地便) : 두일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다.
○ 윗구리골 : 구리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 중리(中里)〔중리동〕 : 두일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두곡과 송정리 중간이 된다.
4. 백곡리(白谷里)

[사진-36. 백곡교와 백곡리 마을 전경 ]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인데 마을을 둘러싼 청룡산(靑龍山) 줄기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가 99개가 되어 1백 개에서 1개가 모자라 ‘백(百)에서 한 획을 뺀 흰백(白)자를 써서 백곡리(白谷里)로 불렸다고 한다. 1914년 향기실, 이피굴, 구리개를 병합하여 백곡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구로현(九老峴)〔구리개〕 : 행기실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이 곳은 큰 가뭄이 없어 90세 이상 장수하는 노인이 아홉분 사셨다하여 구노현(九老峴)이라 칭하였는데, 부르기가 쉽게 구리개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90세 이상 장수하는 분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37. 이피골 마을 전경 ]
○ 독고리골 : 백곡리에 있는 마을이다.
○ 이태굴〔이피굴, 입표곡(立表谷), 입표동, 입피굴〕 : 행기실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는 배가 드나들어서 배를 매는 표석이 있었다고 한다.
○ 향기실(香氣室)〔행기실〕 : 백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백화초목을 다량 식재하여 향기와 열매가 많다는 뜻에서 향기실(香氣室)이라고 칭한다.
5. 석교리(石橋里)〔돌다리〕

[사진-38. 석교리 전경 ]
본래 남양군 쌍수리면의 지역으로서 도로가 개설되기 전 바다와 접했던 곳으로 수백년이 지나는 동안 파도에 암석이 깎여 자연적으로 돌로 된 다리가 형성되어 돌다리 또는 석교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방죽머리, 벗말, 무한이, 역말(驛石), 마리실(馬里實)을 병합하여 석교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마리실(馬里實) : 역말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평야지대의 안쪽에 위치한 부락이므로 원래는 안말이라 칭하였으며 약400여년 전 말이 우리를 뛰쳐나가서 주민이 식수로 이용하는 큰 우물에서 물을 먹다가 우물에 빠져죽었으므로 주민들이 분개하여 우물을 매몰하였다 하여 마리실로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본 동리에는 성씨(成氏)가 집거하여 주로 축마하였는데 그 우물을 매물하였더니 점차 성씨(成氏)가 패망하였다는 전설에 의하여 마리실로 칭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사진-39. 마리실 마을 전경 ]
○ 무안이(무한이) : 석교리에 있는 마을이다.
○ 방죽머리 : 돌다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슬한간 바다를 메워 제방을 쌓은 후 제방이 머리부분에 위치한 부락이라 하여 방죽머리라 불리어지고 있다.
○ 범굴 : 석교리에 있는 골짜기로 범이 살았다고 한다.
○ 벗말 : 돌다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염전이 있었다.
○ 보십재 : 석교리에 있는 산으로 보십(보습)처럼 생겼다.
○ 불당(佛堂)골 : 석교리에 있는 골짜기로 불당이 있었다.
○ 사령바위 : 석교리에 있는 바위이다.
○ 십오염전(十五鹽田) : 형무소염전 옆에 있는 염전으로 15명이 계를 모아 만들었다고 전한다.
○ 역말〔역석〕: 돌다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역참이 있었다. 중국사신 및 파병역군이 왕래할 때 말을 대기하였다가 다음 역으로 타고 가는 것으로부터 역석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 형무소염전 : 마도염전 북쪽에 있었던 염전이다.

[사진-40. 역말 마을 전경 ]
6. 송정리(松亭里)〔하일(荷日), 송정〕

[사진-41. 송정 2리 범죄 없는 마을(1991)]
본래 남양군 쌍수리면의 지역으로서 하일 또는 소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송정이라 하였는데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박촌(朴村), 법동(法洞)을 병합하여 송정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박촌(朴村) : 송정리에 있는 마을로 박씨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 법동(法洞) : 하일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홍씨들이 집단으로 살아서 홍씨 가문에서 학자와 고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법이 필요 없을 정도로 법을 잘 지켜온 마을이라 하여 법동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송정 2리는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되어 10년이나 지속되고 있다.
○ 하일(荷日) : 산맥이 연화같이 생겼다 하여 하일이라 칭하여졌다고 한다.
○ 아래하일 : 하일의 아랫마을이다.
7. 쌍송리(雙松里)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인데 예부터 마을 뒷산이 두 개의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어서 쌍봉동(雙峯洞)으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쌍봉동 거적리(巨積里), 송치리(松峙里), 해광동(海光洞)을 병합하여 쌍봉과 송치의 이름을 따서 쌍송리라 하여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거적리(巨積里)〔거석동(巨石洞)〕 : 쌍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약 300여년 전 이 마을에 박씨가 집단 거주하여 기와집을 많이 짓고 부유하게 살았으며, 가문에 노적가리를 쌓으면 타 부락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여 거적리라 칭하게 되었다한다.
○ 경기염전(京畿鹽田) : 쌍송리에 있는 큰 염전이다.
○ 방죽암말 : 거적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방죽이 있고, 방조제의 구축으로 동제방 내부에 위치한 데서 연유되었다.
○ 솔티〔송치〕 : 해광동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
○ 송리동(松里洞) : 거적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 쌍봉동(雙峯洞) : 거적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해광동(海光洞) : 거적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해광염전(海光鹽田) : 쌍송리에 있는 염전으로 1919년에 만들어졌다.
○ 화남염전(華南鹽田) : 경기염전 남서쪽에 있는 염전이다.
8. 슬항리(瑟項里)〔비파목, 비아목, 슬항〕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비파의 목처럼 생겼으므로 비파목, 비아목 또는 슬항이라 하였는데 1914년 절골을 병합하여 슬항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절골〔사곡(寺谷)〕 : 비아목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 곳에 큰 사찰이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큰절은 불에 타 소실되어 재건되지 못했으며 그 절터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남아있어 절골이라 부른다.
9. 청원리(靑園里)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인데, 옛부터 성(城)이 있어서 ‘성목재’라고 불려지다가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라 하여 ‘청산동(靑山洞)이라고 불려졌다. 1914년 청산동, 상원동, 송대 막산리, 수루지를 병합하여 청산과 상원의 이름을 따서 청원이라 하여 수원군에 편입되었다.
○ 막산리(幕山里)〔막산(幕山)〕 : 청원리 중앙에 있는 마을로 청원리에서 맨끝의 산밑부락이라 하여 막산리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 상원동(上園洞) : 막산리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 송대(送臺)〔송항(送項)〕 : 상원동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수 백년 전 사대부를 보내기 위해 이 곳에 성을 쌓고 성안에 누각을 짓고 환송하는 곳으로 사용한 후부터 송대라고 칭하였다 한다.
○ 수루지(水樓地) : 청산동 동쪽에 있는 방조제를 구축하기 전에는 조수가 마을까지 침수하여 유수(溜水)되었다고 한다.
○ 청산골〔청산(靑山), 청산동(靑山洞)〕 : 막산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청룡(靑龍) : 인근섬에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산모양이 청룡머리와 비슷하여 청룡이라 불리워졌다 한다
10. 해문리(海門里)〔해문, 역골, 역말, 굿벌, 해문동, 역곡, 구화〕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으로서 약500여년 전 조수를 이용하여 동리입구 산간저지대를 배편으로 출입하였다고 하여 해문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해문구화역(海門仇火驛)이 있었으므로 해문, 역말, 역골 등이라 하였는데 1914년 중간리, 꽃부리, 관굴을 병합하여 해문리라 해서 수원군 마도면에 편입되었다.
○ 관굴 : 역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꽃부리 : 중간지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쑥가지 : 제방에 쑥이 많이 나서 쑥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이웃 동네까지 나누어 먹었다하여 쑥가지라 불리워지고 있다.
○ 중간리(中間里〔중간지(中間地)〕 : 해문리 중앙에 있는 마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