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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마을이름 제4절 매송면(梅松面)

작성자
화성문화원
작성일
2025-04-11
조회
12
제4절 매송면(梅松面)

본래 수원군의 지역으로 조선조 중엽부터 수원부 관할하의 호매절(好梅折)이라 불리어오다가 1789년(정조 13)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수원 화산으로 천묘(遷墓)하고 수원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키면서 매곡면(梅谷面)으로 개칭하고 광주부의 송동면(松洞面)과 매곡면(梅谷面)을 수원부로 이속하였다. 1919년 전 광주군 송동면의 현천(玄川), 유곡(柳谷), 야목(野牧), 빈정(濱汀), 소곡(蘇谷), 원리(院里), 만촌(晩村), 송라(松蘿), 병실(丙室)의 9개 동리를 병합하여 매곡의 매자(梅子)와 송동의 송자(松子)의 머리 글자를 따서 매송면이라 하였다. 동쪽은 수원시, 남쪽은 봉담면과 비봉면, 서쪽은 비봉면, 북쪽은 광명시에 닿아 있다.

1. 송라리(松蘿里)〔소골, 솟골, 소곡, 송라동〕

본래 광주군 송동면(松洞面) 의 지역으로서 리명(里名)은 소골, 솟골, 소곡, 송라동이라 하였는데, 약 600년 전 여주이씨의 진이라는 사람이 자기 고향인 광교를 떠나 이 곳에 들어온 바 송목과 백목 댕댕이가 많아 송라리(松蘿里)라 칭하였다고 한다. 1895년(고종 32)에 수원군에 편입되고 1914년 병실을 병합하여 송라리라 해서 매송면에 편입되었다.
○ 병실(丙室) : 솟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 부락 집들의 좌향(坐向)이 대부분 풍수지리상 병향(丙向)을 하고 있다 하여 병실이라 불렀다.
○ 신촌(新村) : 송라리에 새로 된 마을이다. 1927년 농촌진흥회가 발족될 때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신촌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 옥녀봉(玉女峯) : 윗신촌 동쪽에 있는 산이다.
○ 윗신촌 : 신촌의 위쪽 마을이다.

2. 숙곡리(肅谷里)〔쑥골, 숙곡〕

본래 수원군 매곡면의 지역으로 쑥골 또는 숙곡이라 하였는데 고을이 깊고 산림이 울창하여 숙연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라고 해서 숙곡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화촌, 상나뭇골, 석수동, 장승헌을 병합하여 숙곡리라 해서 매송면에 편입되었다.
○ 상나뭇골 : 쑥골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큰 향나무가 있었다.
○ 석수동(石水洞) : 화촌 서쪽에 있는 마을로 돌과 물이 많은 곳이다.
○ 장승고개〔장승현(長承峴), 장승동(長承洞)〕 : 화촌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광주군과 남양군의 경계가 되었으며 장승이 있었다고 한다.
○ 화촌(花村) : 삼나뭇골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3. 야목리(野牧里)〔들목, 야목〕

본래 광주군 송동면(松洞面) 외 지역으로서 들의 목이 되므로 들목 또는 야목이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에 수원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현천, 유곡, 빈정포를 병합하여 야목리라 해서 매송면에 편입되었다.
○ 거무내〔현천(玄川)〕 : 들목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뒷산은 옥녀가 거문고를 뜯는 형상이며 마을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거무내 가가 됨으로 거무내라고 불리게 되었다.
○ 넘말 : 현천 남쪽에 있는 마을로 산너머 쪽이 된다.
○ 당골〔당곡(堂谷)〕 : 미륵당이 있는 마을로 마을 윗산 정상에 예부터 당(堂)집이 현존하여 매년 한번씩 마을주민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 빈정포(濱汀浦) : 당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해변가를 끼고 있다 하여 빈정이라 칭하였다.
○ 빈정철교(濱汀鐵橋) : 빈정에 있는 옛 수인선 기차의 다리로 1937년에 놓았다.
○ 유곡(柳谷) : 당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4. 어천리(漁川里)〔어랑내, 어랑천, 어량천, 어천〕​

본래 수원군 매곡면의 지역으로 어랑내의 가가 되므로 어랑내, 어량내, 또는 어랑천, 어량천, 어천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어천리라 해서 매송면에 편입되었다.
○ 내촌(內村) : 어랑내의 안쪽 마을로 옛부터 초계정씨(草溪鄭氏)가 많이 살았다.
○ 외촌(外村) : 어랑내 바깥쪽에 있는 마을로 단양우씨(丹陽禹氏)가 많이 살았다.​



[사진-42 어천리의 옛모습(1979) ]

5. 원리(院里)〔서원말, 서원리〕



[사진-43. 매곡서원 터 ]

본래 광주군 송동면(松洞面)의 지역으로서 조선 1661년(현종 2)에 세워진 명고서원(明皐書院 : 풍양조씨 집안의 조익, 조복양, 조지겸의 3대를 봉안)이 있었으므로 서원말 또는 서원리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에 수원군에 편입되고, 1914년 소곡, 만촌을 병합하여 원리라 해서 매송면과 편입되었다.

○ 만도기〔만평(晩坪), 만촌(晩村), 만평리〕 : 서원말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6. 원평리(院坪里)〔원들, 원평〕

본래 수원군 매곡면의 지역으로 조선시대에 동화원(同化院)이 있었으므로 원들 또는 원평이라 하였는데 1914년 벌터를 병합하여 원평리라고 해서 매송면에 편입되었다.
○ 벌터〔사당(祠堂)골, 야촌(野村)〕 : 원들 남쪽 벌판에 있는 마을로 1927년도 농촌진흥회가 발족하면서 야촌(野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사당이 있었다.

7. 천천리(泉川里)〔샘내, 샘내골〕

본래 수원군 매곡면의 지역으로서 좋은 샘이 있으므로 샘내, 샘내골, 천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서원말을 병합하여 천천리라 해서 매송면에 편입되었다.
○ 서원말〔서원촌(書院村)〕 : 천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1694년(숙종 20)에 세워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제사 지냈으며 1868년(고종 5)에 폐해진 매곡서원(梅谷書院)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 일광사(日光寺) : 천천리에 있는 절로 능력장엄탑이 있다.
○ 오층능력장엄탑(五層能力壯嚴塔)〔오층석탑(五層石塔), 천천리 5층석탑(泉川里 5層石塔)〕 : 일광사에 있는 5층석탑이다. 탑몸 동쪽 면에는 석가모니, 서쪽 면에는 아미타불, 남쪽 면에는 야광보삼, 북쪽 면에는 관세음보살을 돋을새김으로 기묘하게 새기었는데 매우 영검해서 정성을 들여 탑을 돌면서 기원하면 소원을 이룬다고 한다.
○ 칠보암 터〔칠보암일(七寶庵一)〕 : 서원말 북쪽 칠보산에 있는 칠보암의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