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마을이름 제6절 비봉면(飛鳳面)
카테고리
화성의 지명유래
작성자
화성문화원
작성일
2025-04-11
조회
23
제6절 비봉면(飛鳳面)
화성시 2읍 1동 12면의 하나. 본래 남양군의 지역으로서 미지곶면(彌知串面)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인천부의 이포면(梨浦面)의 15개 동리가 되고, 1914년 저팔리면(楮八里面)의 비봉산의 이름을 따서 비봉면이라 하여 수원군에 편입되어 9개리로 개편 관할하였는데 1954년 6월 8일 11개리로, 1955년 6월 3일 23개리로 재조정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 11027호에 의하여 상기리를 봉담면에 넘겨주어서 8개리가 되었다. 동쪽은 매송면과 봉담면, 남쪽은 팔탄면, 서쪽은 남양동, 북쪽은 바다 건너 광명시와 매송면에 닿아 있다.
1. 구포리(鳩浦里)〔굿개, 구포, 구포동〕

[사진-50 구포교의 옛 모습 (1978)]
본래 남양군 미지곶면의 지역으로서 1893년 앞 개에 백구(갈매기)가 많으므로 굿개 또는 구포, 구포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검다지, 날무기, 두렁이를 병합하여 구포리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검다지(檢多地)〔검다동(檢多洞)〕 : 뱀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1895년(고종 32) 경복궁을 지을 때 태형산의 나무를 베어 이 곳에서 검사를 해서 바다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 날무기〔일묵동(日默洞)〕 : 굿개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밑물이 드나들어서 나루의 목이었다고 전한다.
○ 두렁이〔두릉(杜陵)이〕 : 검다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뱀골〔배암골, 뱅골, 사곡동(巳谷洞)〕 : 날무기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 계곡에 뱀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뱀 사(巳)에 곡(谷)자를 붙여 사곡동(巳谷洞)이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뱀골로 불리우고 있다.
2. 남전리(南田里)

[사진-51. 남전리의 옛 모습 (1971)]
본래 남양군 미지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대전동, 신남동, 존의동, 유지동 일부를 병합하여 신남과 대전의 이름을 따서 남전리라 하여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대전동(大田洞)〔한밭〕 : 존의동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큰 밭이 있다.
○ 신남동(新南洞) : 한밭 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 존의동(存儀洞) : 신남동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마을 이름 제정 때 이장(里長) 이존의(李存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3. 삼화리(三花里)
본래 인천부 이포면의 지역인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남양군 미지곶면에 편입되고 1914년 연화동, 이화동, 도파동을 병합하여 3꽃의 동리라는 뜻으로 삼화리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건롱골〔건농곡(乾農谷), 건농동(乾農洞)〕 : 삼화리에 있는 마을로 땅이 매우 메말랐다.
○ 도파동(倒洞)〔도화동, 도팟골〕 : 연화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① 지형이 파초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② 복숭아 꽃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배무지〔배꼬지, 배곶이, 이화동(梨花洞)〕 : 삼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이 마을에 배나무가 많아 배꽃이 만발하여 주민이 부르기를 배곶이라 불러왔는데 한자로 표기되면서 이화동(梨花洞)이 되었다고 한다.
○ 안곡동〔안골, 여꾸내, 여꾸〕 : 배꾸지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약 300년 전 청령군(淸寧君)과 그 아들 청평군(淸平君) 부자가 살았는데 청평군이 당시 마을이름을 선조 청령군의 평안할 녕자의 안자를 택하여 안골로 호칭하였다고 한다 .
○ 연화동(蓮花洞) 연화지〔蓮花池〕 : 배꾸지 서쪽에 있는 마을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4. 쌍학리(雙鶴里)

[사진-52. 쌍학교량 공사(1970) ]
본래 남양군 미지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동학동과 백학동을 병합하여 쌍학동이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개무더미〔개무동(開舞洞)〕 : 백학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개무덤이 있었다.
○ 동학동(東鶴洞) : 학굴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왕이 이 곳을 지나던 길에 산세를 보니 마치 학의 모습을 닮았고 그 위치가 동쪽에 있다 하여 동학이라 한 데서 주민들이 동학동이라 불러왔다.
○ 백학(白鶴)〔백학동(白鶴洞), 백학(白鶴)골〕 : 학굴 서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학처럼 생 겼다.
○ 상동학동(上東鶴洞) : 동학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 학굴〔학동(鶴洞)〕 : 쌍학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흰 학이 많이 깃들었다고 한다.
5. 양노리(兩老里)
본래 남양군 미지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백로동(白老洞, 바리골)과 건로동(件老洞, 널문이, 板門洞)의 두 이름을 따서 양노리라 하여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구포장터(鳩浦場)〔굿게장터, 장(場)터, 시장동(市場洞)〕 : 널문이 북쪽 구포리 굿개 경계에 있는 마을로 시장이 섰었다고 한다. 조선조 말엽 이 곳은 면소재지였는데 5일장이 서기도 하여 항상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상점이 즐비하여 면민이 이 곳을 왕래하여 시장의 성격을 형성, 훗날 시장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널문이〔판문동(板門洞), 건로동(件老洞)〕 : 양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전에는 마을 앞까지 갯물이 드나들어서 널문으로 그 물을 막았다고 한다. 상주 박씨가 많이 살았다.
○ 미력골〔미륵동(彌勒洞), 미륵골〕 : 널문이 남쪽에 있는 마을로 돌 미륵이 있다.
○ 바리골〔바릿골, 백로동(白老洞)〕 : 널문이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① 지형이 바리때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② 늙은 소나무가 무성해서 백로가 많이 깃들었던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 신한리 : 널문이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염치(鹽峙)〔염치고개〕 : 북양동에서 비봉면 양로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6. 유포리(柳浦里)〔버들개, 버들무지, 유포〕
본래 인천부 이포면의 지역으로서 앞에 개가 있고 버들이 무성하므로 버들개, 버들무지 또는 유포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남양군 미지곶면에 편입되고, 1914년 유지동 대장골을 병합하여 유포리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대장곡(大將谷)〔대장골〕 : 버들무지 남쪽에 있는 마을.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의 명당이 있어 대장곡이라 한다. ○ 유지동(柳枝洞) : 대장골 남쪽에 있는 마을. 앵소유지형(鶯巢柳枝形)의 명당이 있다고 하며, 버들가지에 꾀꼬리가 집을 짓는 형극으로 유지동(柳枝洞)이라 한다.
○ 함박골 : 유지동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7. 자안리(紫安里)〔안양(安陽), 재양(載陽), 자양동(紫陽洞)〕
본래 재양현(載陽縣) 또는 안양현(安陽縣)이 있던 자리인데 고려 시대에 수주에 편입되고, 조선 시대에 저팔리면이 되었다. 안양, 재양 또는 자양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신안동(新安洞) 등을 병합하여 자안리라 해서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신안동(新安洞) : 재양 북동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8. 청요리(靑蓼里)
본래 남양군 저팔리면의 지역인데 청용 동남쪽에 있는 요골은 옛날부터 갈대(蓼)가 많이 자생하여 주민들은 이 갈대로 살구지를 만들어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1914년 청룡동과 요곡동을 병합하여 청요리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요곡동(蓼谷洞)〔욧골, 요곡, 요골〕 : 청룡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이 마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동리어귀 방죽아래 살구지에서는 갈대로 고기 잡는 기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살구지 동남쪽에는 유난히도 푸른 갈대가 많아 요곡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 용머리 : 청룡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 청룡(靑龍)〔청룡동(靑龍洞), 청룡(靑龍)골〕 : 청요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 태행산의 청룡이 된다.
화성시 2읍 1동 12면의 하나. 본래 남양군의 지역으로서 미지곶면(彌知串面)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인천부의 이포면(梨浦面)의 15개 동리가 되고, 1914년 저팔리면(楮八里面)의 비봉산의 이름을 따서 비봉면이라 하여 수원군에 편입되어 9개리로 개편 관할하였는데 1954년 6월 8일 11개리로, 1955년 6월 3일 23개리로 재조정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 11027호에 의하여 상기리를 봉담면에 넘겨주어서 8개리가 되었다. 동쪽은 매송면과 봉담면, 남쪽은 팔탄면, 서쪽은 남양동, 북쪽은 바다 건너 광명시와 매송면에 닿아 있다.
1. 구포리(鳩浦里)〔굿개, 구포, 구포동〕

[사진-50 구포교의 옛 모습 (1978)]
본래 남양군 미지곶면의 지역으로서 1893년 앞 개에 백구(갈매기)가 많으므로 굿개 또는 구포, 구포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검다지, 날무기, 두렁이를 병합하여 구포리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검다지(檢多地)〔검다동(檢多洞)〕 : 뱀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1895년(고종 32) 경복궁을 지을 때 태형산의 나무를 베어 이 곳에서 검사를 해서 바다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 날무기〔일묵동(日默洞)〕 : 굿개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밑물이 드나들어서 나루의 목이었다고 전한다.
○ 두렁이〔두릉(杜陵)이〕 : 검다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뱀골〔배암골, 뱅골, 사곡동(巳谷洞)〕 : 날무기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 계곡에 뱀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뱀 사(巳)에 곡(谷)자를 붙여 사곡동(巳谷洞)이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뱀골로 불리우고 있다.
2. 남전리(南田里)

[사진-51. 남전리의 옛 모습 (1971)]
본래 남양군 미지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대전동, 신남동, 존의동, 유지동 일부를 병합하여 신남과 대전의 이름을 따서 남전리라 하여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대전동(大田洞)〔한밭〕 : 존의동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큰 밭이 있다.
○ 신남동(新南洞) : 한밭 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 존의동(存儀洞) : 신남동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마을 이름 제정 때 이장(里長) 이존의(李存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3. 삼화리(三花里)
본래 인천부 이포면의 지역인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남양군 미지곶면에 편입되고 1914년 연화동, 이화동, 도파동을 병합하여 3꽃의 동리라는 뜻으로 삼화리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건롱골〔건농곡(乾農谷), 건농동(乾農洞)〕 : 삼화리에 있는 마을로 땅이 매우 메말랐다.
○ 도파동(倒洞)〔도화동, 도팟골〕 : 연화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① 지형이 파초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② 복숭아 꽃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배무지〔배꼬지, 배곶이, 이화동(梨花洞)〕 : 삼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이 마을에 배나무가 많아 배꽃이 만발하여 주민이 부르기를 배곶이라 불러왔는데 한자로 표기되면서 이화동(梨花洞)이 되었다고 한다.
○ 안곡동〔안골, 여꾸내, 여꾸〕 : 배꾸지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약 300년 전 청령군(淸寧君)과 그 아들 청평군(淸平君) 부자가 살았는데 청평군이 당시 마을이름을 선조 청령군의 평안할 녕자의 안자를 택하여 안골로 호칭하였다고 한다 .
○ 연화동(蓮花洞) 연화지〔蓮花池〕 : 배꾸지 서쪽에 있는 마을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4. 쌍학리(雙鶴里)

[사진-52. 쌍학교량 공사(1970) ]
본래 남양군 미지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동학동과 백학동을 병합하여 쌍학동이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개무더미〔개무동(開舞洞)〕 : 백학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개무덤이 있었다.
○ 동학동(東鶴洞) : 학굴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왕이 이 곳을 지나던 길에 산세를 보니 마치 학의 모습을 닮았고 그 위치가 동쪽에 있다 하여 동학이라 한 데서 주민들이 동학동이라 불러왔다.
○ 백학(白鶴)〔백학동(白鶴洞), 백학(白鶴)골〕 : 학굴 서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학처럼 생 겼다.
○ 상동학동(上東鶴洞) : 동학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 학굴〔학동(鶴洞)〕 : 쌍학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흰 학이 많이 깃들었다고 한다.
5. 양노리(兩老里)
본래 남양군 미지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백로동(白老洞, 바리골)과 건로동(件老洞, 널문이, 板門洞)의 두 이름을 따서 양노리라 하여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구포장터(鳩浦場)〔굿게장터, 장(場)터, 시장동(市場洞)〕 : 널문이 북쪽 구포리 굿개 경계에 있는 마을로 시장이 섰었다고 한다. 조선조 말엽 이 곳은 면소재지였는데 5일장이 서기도 하여 항상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상점이 즐비하여 면민이 이 곳을 왕래하여 시장의 성격을 형성, 훗날 시장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널문이〔판문동(板門洞), 건로동(件老洞)〕 : 양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전에는 마을 앞까지 갯물이 드나들어서 널문으로 그 물을 막았다고 한다. 상주 박씨가 많이 살았다.
○ 미력골〔미륵동(彌勒洞), 미륵골〕 : 널문이 남쪽에 있는 마을로 돌 미륵이 있다.
○ 바리골〔바릿골, 백로동(白老洞)〕 : 널문이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① 지형이 바리때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② 늙은 소나무가 무성해서 백로가 많이 깃들었던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 신한리 : 널문이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염치(鹽峙)〔염치고개〕 : 북양동에서 비봉면 양로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6. 유포리(柳浦里)〔버들개, 버들무지, 유포〕
본래 인천부 이포면의 지역으로서 앞에 개가 있고 버들이 무성하므로 버들개, 버들무지 또는 유포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남양군 미지곶면에 편입되고, 1914년 유지동 대장골을 병합하여 유포리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대장곡(大將谷)〔대장골〕 : 버들무지 남쪽에 있는 마을.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의 명당이 있어 대장곡이라 한다. ○ 유지동(柳枝洞) : 대장골 남쪽에 있는 마을. 앵소유지형(鶯巢柳枝形)의 명당이 있다고 하며, 버들가지에 꾀꼬리가 집을 짓는 형극으로 유지동(柳枝洞)이라 한다.
○ 함박골 : 유지동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7. 자안리(紫安里)〔안양(安陽), 재양(載陽), 자양동(紫陽洞)〕
본래 재양현(載陽縣) 또는 안양현(安陽縣)이 있던 자리인데 고려 시대에 수주에 편입되고, 조선 시대에 저팔리면이 되었다. 안양, 재양 또는 자양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신안동(新安洞) 등을 병합하여 자안리라 해서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신안동(新安洞) : 재양 북동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8. 청요리(靑蓼里)
본래 남양군 저팔리면의 지역인데 청용 동남쪽에 있는 요골은 옛날부터 갈대(蓼)가 많이 자생하여 주민들은 이 갈대로 살구지를 만들어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1914년 청룡동과 요곡동을 병합하여 청요리라 해서 수원군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 요곡동(蓼谷洞)〔욧골, 요곡, 요골〕 : 청룡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이 마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동리어귀 방죽아래 살구지에서는 갈대로 고기 잡는 기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살구지 동남쪽에는 유난히도 푸른 갈대가 많아 요곡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 용머리 : 청룡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 청룡(靑龍)〔청룡동(靑龍洞), 청룡(靑龍)골〕 : 청요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 태행산의 청룡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