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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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마을이름 제8절 송산면(松山面)
카테고리
화성의 지명유래
작성자
화성문화원
작성일
2025-04-11
조회
196
제8절 송산면(松山面)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으로서, 8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수산면의 5개 동리와 세곶면(細串面)의 10개 동리를 병합하여 송산면이라 하여 수원군에 편입 되어 14개 리로 개편 관할하게 되었다. 1933년 자연마을을 구분, 행정리 28개리로 되었고 1949년 화성군 송산면에 편입된 후 법정리 15개, 행정리 28개리를 관할해오고 있다. 동쪽은 마도면과 남양동, 남쪽은 마도면과 서신면, 서쪽은 광명시, 북쪽은 안산시이다.
1. 고정리(古井里)
본래 남양군 세곶면의 지역으로 1914년 대각동, 고잔동, 음섬, 배머리를 병합하여 고잔과 원정의 이름을 따서 고정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사진-58. 우음도 마을 전경(2000)]
○ 고잔(古棧)〔고잔동(古棧洞)〕 : 큰한뿌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곶으로 되어 있다. 바닷물이 지금의 육지 깊은 곳까지 들어왔으며 주민들이 갯고랑에 아이를 놓고 다녔다 하여 고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녹사리 : 녹이라 함은 배의 닷줄을 일컫는 옛말로 녹사리란 바닷줄을 감는다는 뜻으로 이 곳이 포구로 배가 많이 드나들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 닭섬 : 배미리 북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이다.
○ 먼우물〔원정(遠井), 원정동(遠井洞)〕 : 큰한뿌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우물이 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밤고지 : 천등산에서 예부터 밤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이 곳에서 배로 인천 및 충청도 등으로 밤을 운반하는 나루터였다고 하여 밤고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우음도(牛音島)〔음섬〕 : 배머리 북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이다.
○ 배머리 : 사면이 바다였을 때 이 곳에 배들이 많이 머물렀다고 하며 산의 지형이 배의 머리 부분과 같다고 하여 배머리라 부른다.
○ 큰한뿌리〔대일각(大一角)〕 : 고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지형이 소의 뿔처럼 생겼다 한다. 후에 대일각(大一角)과 소일각(小一角)으로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2. 고포리(古浦里)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인데 1914년 고잔동과 포막동을 병합하여 고포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사진-59. 어도·형도 입구 (2002)]
○ 개마기〔개매기, 포막동(浦幕洞)〕 : 마산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바다를 막아 제방을 형성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개매기라 부르며 예전에는 포구가 있어 포막동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은 큰개매기, 작은 개매기로 나누어 부른다. 고개가 목이져 있다.
○ 고잔〔마산포(馬山浦), 고잔동〕 : 고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① 뒷산이 말처럼 생겼다고도 하고 ② 곶으로 되어 있다고도 한다.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장수 원세개가 이 곳으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왔으며, 대원군이 중국으로 끌려갈 때도 이 곳에서 배를 탄 역사의 현장으로 송산면 유일의 서해안 포구였다.
○ 마산포 선창(馬山浦 船艙) : 마산포 서쪽에 있는 나루터로 전에는 장삿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 마루게〔월현동(月峴洞)〕 : 마루게란 고어로 달을 가리키는 말이며 마을 지형이 달과 같이 생겼다 하여 다루게 또는 월현동(月峴洞)이라 부른다.
○ 소포막(小浦幕)〔작은 개매기〕 : 개매기의 작은 마을이다.
○ 어도(漁島)〔어섬, 엇섬〕 : 마산포 서북쪽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고기를 많이 잡는 섬이라고 하여 엇섬으로 부른다고 한다.
○ 이포동(二浦洞) : 고포리에 있는 마을로 고려 시대에 이포부곡(梨浦部曲)이 있었다.
○ 큰 개매기〔대포막(大浦幕)〕 : 개매기의 큰 마을이다.
○ 큰머리〔큰모리, 대두리(大頭里)〕 : 마산포 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뒤의 산이 병풍처럼 이어져 내려와 바다와 맞붙은 마을이다. 산의 머리부분이 크다 하여 큰머리 또는 대두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3. 독지리(禿旨里)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인데 1914년 독내(돌내)와 문지동을 병합하여 독지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사진-60. 형도 원경]
○ 독내〔돌내, 돌천(乭川), 석천동(石川洞)〕 : 문마루 동쪽에 있는 마을로 돌이 많은 내가 있었다고 한다.
○ 목섬〔항도(項島)〕 : 문마루 서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목처럼 생겼다고 한다.
○ 문마루〔문지(文旨), 문지동(文旨洞)〕 : 독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마을 앞산에 서당을 짓고 선비들이 주야로 글을 읽었다 하여 문지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 저울이〔형도(衡島)〕 : 목섬 북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저울추처럼 생겼다.
4. 마산리(馬山里)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으로 이 지역을 통틀어 마산포라 하였는데 1914년 원마산포는 고포리라 하고 장문, 갓마루, 도말을 병합하여 마산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 갓마루〔관현동(冠峴洞)〕 : 마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지형이 갓과 같으며 또한 달과도 같다 하여 월현(月峴), 또는 관현동(冠峴洞)이라고도 한다.
○ 도말〔도정동(道井洞)〕 : 갓마루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경치가 좋고 물이 깨끗하여 선비들이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이 곳을 많이 찾았다 하여 도정동(道井洞) 또는 도말(道村)로 불리었다고 한다.
○ 장문(長門)〔장문동(長門洞)〕 : 갓마루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서신면 전곡리 앞 바다에서 이 곳까지 갯골이 있었는데 유난히 좁고 깊었으며 이 곳에 포구가 있어 인천 및 충청도 등의 배들이 많이 출입하였다 하여 장문이라고 부른다 한다.
5. 봉가리(鳳歌里)〔봉가말, 봉가동〕
본래 남양군 수산면의 지역으로 매봉산(鷹峯山) 밑에 울창한 노송이 많으며 매(鷹) 앞에 각종 새들이 공포에 쌓여 우는 것을 새들이 노래한다 하여 봉가말 또는 봉가동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봉가리로 부르고 있다. 1914년 반율, 지끼미를 병합하여 봉가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과 편입되었다.
○ 기끼미〔지끼미〕 : 반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이 곳에 목화를 많이 심었으며 이 목화를 주민들이 물레를 이용하여 실을 뽑아 직물을 많이 생산하였다 하여 지기미 또는 직낌이라 부르게 되었다.
○ 반곡동(盤谷洞)〔반율(盤栗)〕 : 봉가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 밤나무가 많아 밤이 많이 생산되었다 하여 반율(盤栗)이라 부르게 되었다.
○ 중간리(中間里)〔중간말〕 : 반율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6. 사강리(沙江里)

[사진-61. 사강장 원 장터 ]
본래 남양군 수산면의 지역으로서 예부터 농산물의 집산지일 뿐만 아니라 전에는 이 곳까지 조수가 드나들어서 강처럼 되었으며 유난히 모래가 많았다고 해서 사강이라 하였는데, 1914년 지구말, 정도리를 병합하여 사강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송산면의 중심지가 되어 면사무소, 경찰지서, 우체국, 학교, 시장들이 위치해 있다.
○ 경교(京橋)〔정도, 정도리〕 : 사강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바깥사강〔외사강(外沙江)〕 : 사강의 바깥쪽 마을로 산등성이를 사이에 두고 마을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서 사강 밖에 생긴 마을이라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 사강시장〔구시장〕 : 사강리에 있는 시장이다.
○ 신외동(新外洞) : 바깥사강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마을이 남북으로 산등성이 사이로 있고, 새로 사강 밖에 생긴 마을이라 하여 안사강과 바깥사강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 씨름터 : 사강리에 있는 씨름터로 현재 송산중학교가 된다.
○ 아랫정도〔하경교(下京橋)〕 : 정도 아래쪽의 마을이다.
○ 안사강〔내사강(內沙江)〕 : 사강의 안쪽마을이다. 사강지역이 넓고 촌락이 군데군데 있는데 깊숙이 입구에 있기 때문에 안사강리라 부른다.
○ 윗정도〔상경교(上京橋)〕 : 정도 위쪽의 마을이다.
○ 저구동(渚鳩洞)〔저구말〕 : 사강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현 사강시장 내에 위치한 마을로 전에는 갯물이 드나들었고 그 때마다 바다 비둘기가 모여들었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 정도〔정도리, 경교〕 : 사강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반상이 분명하여 양반에게 불손한 상민은 볼기를 맞고 정(경)을 쳤다고 하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7. 삼존리(三尊里)〔삼존골, 삼존, 삼전동, 문산, 문산동〕
본래 남양군 수산면의 지역으로 이 곳 출신으로 조선 광해군 때의 세도대신 문창부원군(文昌府院君) 류희분(柳希奮)이 그 아우 희발(希發), 희량(希亮)과 함께 벼슬이 높고 행동이 출중하여 가문이 크게 존경을 받았으므로 삼존골, 삼존, 삼존동 또는 문산, 문산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개목골(개밋골) 개묵골, 고잔, 물미를 병합하여 삼존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 간단말 : 삼존리에 있는 마을이다.
○ 갈방죽 : 물미 북쪽에 있는 못으로 갈(갈대)이 무성하였다고 한다.
○ 개목골〔개밋골〕 : 문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고잔(古棧) : 물미 동쪽에 있는 마을로 곶으로 되어 있다.
○ 남염(南鹽)〔신흥동(新興洞)〕 : 물미 동쪽에 새로 된 마을로 한국전쟁 후 유랑민들이 집단적으로 천연염전을 개척한 마을이다.
○ 등대 : 삼존리에 있는 마을이다.
○ 문산(汶山)〔汶山洞〕 : 상존리에 있는 마을로 예부터 서당에서 글공부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데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 물뫼〔물미, 수산동(水山洞)〕 : 개목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광해군 때 영의정 유희분 등이 이 곳에 별장을 짓고 노후를 즐겼다 하며 삼면이 바다이고 한 면이 산이어서 물미 또는 수산동이라 한다.
○ 장승백이 : 옛날 그 곳에 장승이 서있었다는 데서 유래 되었다.
8. 신천리(新天里)
본래 남양군 세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신천동(느루지)과 천등동을 병합하여 신천리라고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천등산(天燈山) 기슭에 위치한 부락으로 바다를 막고 염전을 일구는 동안 생긴 부락이며 새로 생긴 천등산 밑의 마을이라 하여 신천리라 부르게 되었다.
○ 구억(九億)말〔구역말, 구억촌, 천등굴〕 : 신촌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청등산 동쪽 밑이 된다. 주민들이 살던 옛터에 다시 마을이 들어섰다는 뜻에서 구역촌(舊亦村)으로 불려진다.
○ 느루지〔신촌동(新村洞)〕 : 구억말 서북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천등산 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인근 바다를 막아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9. 쌍정리(雙井里)

[사진-62. 쌍정리 마을 전경]
본래 남양군 세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대정동, 흰돌개, 덕우물, 복정동, 신촌동을 병합하여 대정과 복정의 두 이름을 따서 쌍정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 대정(大井)〔한우물〕 : 쌍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큰 우물이 있어 식수는 물론 농업용수로도 이용되었다.
○ 덕우물〔덕정동(德井洞)〕 : 새말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형이 새우등과 같이 생겨 물이 없는 마을이었으나, 새우등 너머에 큰 우물을 판 뒤부터 물을 풍족하게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 매위〔매봉동, 응봉동(鷹峯洞), 매머리〕 : 마을의 지형이 매의 머리형을 하고 있다 하여 매봉동이라 하며 매머리 또는 매위라고도 부르고 있다.
○ 백석현(白石峴)〔흰돌재, 흔들재〕 : 복우물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흰 돌이 많았다고 한다.
○ 복우물〔복정동(福井洞), 석정동(石井洞)〕 : 한우물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돌로 된 우물이 있었다. 동네 가운데 우물이 있고 부락민들이 예로부터 이 물을 이용하였으며, 복이 있는 우물이라 하여 복정(福井) 또는 석정동(石井洞)이라 하였다.
○ 새말〔신촌(新村)〕 : 한우물 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한국전쟁 후의 옹진군 및 연백군 피난민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여 신촌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0. 용포리(龍浦里)
본래 남양군 세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당미, 용수동, 각굴, 고포 등을 병합하여 용수와 고포의 이름을 따서 용포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대원군의 기독교 박해에도 불구하고 감시를 벗어나 기독교 전파가 많이 된 지역으로 옛날에 조수가 드나들 당시 포구에서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포리라 부르게 되었다.
○ 각굴〔각골〕 : 용숫굴 동쪽에 있는 마을로 소의 뿔처럼 생겼다고 한다. 또는 가장자리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 고포(羔浦)〔고포동(羔浦洞), 당미(唐味), 당산, 양개〕 : 각골 동쪽 갯가에 있는 마을로 ① 양쪽으로 개가 있었다고도 하고 ② 신당이 있었다고도 한다.
○ 됫섬〔승도(升島)〕 : 작은 당미 동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됫박처럼 작은 섬’이란 뜻에서 ‘됫섬’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 용수동〔용수동(龍水洞), 용숫굴〕 : 용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옛날 조수가 드나들 때 포구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해서 ‘용숫골 → 용수동’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또한 고어로 ‘농’이란 용을 일컷는 말로서 용이 포구에서 승천했다는 데서 ‘농말’이란 이름도 유래되었다고 한다.
○ 작은당미(唐味) : 당미의 작은 마을이다.
○ 큰 당미 : 당미의 큰 마을로 김녕김씨 대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11. 육일리(六一里)
본래 남양군 수산면의 지역인데 1914년 육도리, 북일동, 창말, 골말, 세경주를 병합하여 육도와 북일의 이름을 따서 육일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 골말 : 육일리에 있는 마을이다.
○ 북일동(北一洞) : 창말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 불당골 : 조그만 절터가 있어 불당골이라 전해지고 있다.
○ 두일〔뒤일〕 : 마을을 두른 구봉산(九峯山) 골자기에 옛 성터와 봉수대가 남아있으며 주민들은 매년 이 곳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 세경주 : 육일리에 있는 마을이다.
○ 송안말〔송내동(松內洞)〕 : 구봉산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주위에 우거진 소나무가 둘러싼 마을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 육교(六校)〔육교동(六校洞), 육도리〕 : 육도리산 기슭에 위치한 육일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조선 때 6교리(校理)가 났다고 한다.
○ 창말〔창촌(倉村)〕 : 북일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서신 송산 지역의 곡물을 저장하던 사창이 있었다고 한다.
12. 중송리(中松里)〔중송골, 중성동〕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으로서 예부터 마을 주변에 노송이 우거져 있어 그 한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라고 하여 중송골 또는 중성동이라고 하였다. 1914년 주송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사강 아지미고개 너머에 위치해 있다.
○ 뚝미 : 옛날 바닷물이 이 곳까지 들어왔었으나 제방을 쌓아 농경지를 만든 이후 ‘뚝미’ 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 뒷골 : 솔뫼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뒤쪽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에서, 또는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운 것과 비슷하고, 특히 이 마을이 소의 꼬리부분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뒷꼬리 → 뒷골’로 전유되어 불려지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 묫골 : 솔뫼 북쪽에 있는 마을로 묘자리가 많다고 한다.
○ 솔뫼〔송산동(松山洞)〕 : 중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옛부터 소나무가 많고 노송이 우거져 ‘솔뫼 → 솔미’로 불러졌다고 한다.
13. 지화리(芝花里)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인데 삼국시대부터 당항진(唐項鎭)포구와 군진이 있던 곳이다. 1914년 거지동, 매화동, 방죽머리, 채경동, 화량동을 병합하여 거지와 화량의 이름을 따서 지화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 거지(居芝)〔거지동〕 : 지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조선말에는 ‘거지동’으로 표기했으며 현재도 지화리에서 중심마을을 이루고 있다.
○ 남경성〔화랑진터〕 : 와룡산 남쪽 화령 둘레에 있는 화량진의 터이다. 돌로 쌓은 성이 있었는데 둘레 2,905자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수군첨절제사영(水軍僉節制使營)이 있었는데 1485년(성종 16)에 혁파하고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었었다.
○ 매화동(梅花洞)〔매화정(梅花亭)〕 : 지화리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형국이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이라고 하여 ‘매화동’ 또는‘매쟁이’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방죽머리 : 양정염전 북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방죽이 있었다.
○ 양정염전(養正鹽田) : 거지 동쪽에 있는 염전으로 1953년 양정중·고등학교 재단에서 만들었다. 양정염전 옆에 마을이 있었다.
○ 채경〔채경동(彩鏡洞), 채화동彩花洞)〕 : 매화동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와룡산(臥龍山) 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봄에는 진달래를 비롯하여 여러 꽃들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었다는 데서 ‘채경동’, ‘채화동’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 화령(花嶺) : 화령진터에 있는 마을로 화량진이라고도 한다. 삼국시대부터 군진이 설치되고 포구로서 중국과 왕래하던 사신들을 영접하던 출입문터가 지금도 남아있다. 와룡산 남쪽 화령 둘레에는 화량진(花梁鎭, 南京城)터와 돌로 쌓은 성이 남아있다.
14. 천등리(天燈里)〔천등굴〕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으로 등잔 모양의 천등산 밑이 되므로 천등굴 또는 천등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둥굴, 서신리, 새말을 병합하여 천등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사진-63. 천등 2리 동편 마을 전경 ]
○ 동편(東便)말 : 천등굴 동편에 있는 마을이다.
○ 둥골〔둥굴, 등곡동(燈谷洞)〕 : 천등굴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뒷산이 나무 등잔과 같다하여 등곡(燈谷)이라 부른다.
○ 새말〔신촌동(新村洞)〕 : 천등굴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천동산 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말(新村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서사리 : 동굴 동쪽에 있는 마을로 뒤에 둘러선 산이 서쪽으로 향한 모양이며 산세가 사자형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 안말 : 천둥굴의 안쪽 마을 천둥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아랫말’로 불리다가 이후 ‘안말’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홍정승가묘(洪政丞家墓) : 천등리에 있는 영의정 홍섬(洪暹)의 조상 무덤이 여러 묘를 잇대어 있었는데 왕씨가 묘 사이에 밀장한 뒤 홍씨의 묘를 무너뜨려 버리고 비석을 없애 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 수 십년 후에 영의정 홍섬이 그 묘를 찾으려고 천둥리에 와서 물으나 아무 흔적조차 알 길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있다가 추레한 옷차림으로 다시 가서 주막에 묵으면서 여러 달을 두고 수소문 하였으나 알 길이 없던 차에 하루는 뜻 밖에 어린 아이가 동무를 부르면서 “홍산골로 나무하러 가자” 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아 그 애들의 뒤를 몰래 밟아가서 자세히 살피었다. 흔적은 없으나 좌향이 분명하므로 남양부사에게 연락하여 남양부사가 수십명의 군정을 데리고 와서 확인한 뒤 묘를 찾아 성분하니 왕씨의 묘가 홍씨의 묘 사이사이에 끼어 있었다. 남양부사가 왕씨의 묘를 모두 없애려고 서둘렀으나 홍 정승이 말리어 그대로 성분을 하고 보니 홍씨의 묘와 왕씨의 묘가 서로 연하며 앞에 절할 자리가 없게 되었다. 그대로 두고 왕씨들을 찾으니 왕씨는 모두 놀라 달아났으므로 여러 방면으로 겨우 찾아서 홍정승이 이르기를 “전에야 어떻게 되었든지 이제 산소가 한 데 잇대어 있으나 현상대로 둘 터이니, 우리가 성묘할 때는 왕씨의 묘를 밟고, 왕씨가 성묘할 때는 또한 우리 산소를 밟고 절하여 동산소와 의를 두텁게 지키자”고 선언하였다. 왕씨들이 그제야 마음을 놓고 같이 감읍하여 그 의를 지금까지 지켜온다고 한다.
15. 칠곡리(漆谷里)〔옻골, 칠곡〕

[사진-64. 칠곡리마을 전경 ]
본래 남양군 서여제면의 지역으로서 구봉산(九峯山)의 9개 봉우리 가운데 7개의 봉우리가 이 마을 쪽을 향해있다고 하여 칠곡(七谷)으로 불려졌다. 그런데 마을뒷산에는 옻나무가 많았으므로 옻골 또는 칠(七)자를 칠(漆)자로 바꿔 칠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칠곡리라 해서 수원군 서신면에 편입되었다.
○ 양지말〔양지촌(陽地村)〕 : 마을의 형태가 야산을 등지고 정남향으로 위치, 온종일 햇볕이 들고 따뜻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양지말’또는 ‘양지촌’으로 불려졌다.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으로서, 8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수산면의 5개 동리와 세곶면(細串面)의 10개 동리를 병합하여 송산면이라 하여 수원군에 편입 되어 14개 리로 개편 관할하게 되었다. 1933년 자연마을을 구분, 행정리 28개리로 되었고 1949년 화성군 송산면에 편입된 후 법정리 15개, 행정리 28개리를 관할해오고 있다. 동쪽은 마도면과 남양동, 남쪽은 마도면과 서신면, 서쪽은 광명시, 북쪽은 안산시이다.
1. 고정리(古井里)
본래 남양군 세곶면의 지역으로 1914년 대각동, 고잔동, 음섬, 배머리를 병합하여 고잔과 원정의 이름을 따서 고정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사진-58. 우음도 마을 전경(2000)]
○ 고잔(古棧)〔고잔동(古棧洞)〕 : 큰한뿌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곶으로 되어 있다. 바닷물이 지금의 육지 깊은 곳까지 들어왔으며 주민들이 갯고랑에 아이를 놓고 다녔다 하여 고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녹사리 : 녹이라 함은 배의 닷줄을 일컫는 옛말로 녹사리란 바닷줄을 감는다는 뜻으로 이 곳이 포구로 배가 많이 드나들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 닭섬 : 배미리 북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이다.
○ 먼우물〔원정(遠井), 원정동(遠井洞)〕 : 큰한뿌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우물이 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밤고지 : 천등산에서 예부터 밤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이 곳에서 배로 인천 및 충청도 등으로 밤을 운반하는 나루터였다고 하여 밤고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우음도(牛音島)〔음섬〕 : 배머리 북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이다.
○ 배머리 : 사면이 바다였을 때 이 곳에 배들이 많이 머물렀다고 하며 산의 지형이 배의 머리 부분과 같다고 하여 배머리라 부른다.
○ 큰한뿌리〔대일각(大一角)〕 : 고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지형이 소의 뿔처럼 생겼다 한다. 후에 대일각(大一角)과 소일각(小一角)으로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2. 고포리(古浦里)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인데 1914년 고잔동과 포막동을 병합하여 고포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사진-59. 어도·형도 입구 (2002)]
○ 개마기〔개매기, 포막동(浦幕洞)〕 : 마산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바다를 막아 제방을 형성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개매기라 부르며 예전에는 포구가 있어 포막동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은 큰개매기, 작은 개매기로 나누어 부른다. 고개가 목이져 있다.
○ 고잔〔마산포(馬山浦), 고잔동〕 : 고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① 뒷산이 말처럼 생겼다고도 하고 ② 곶으로 되어 있다고도 한다.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장수 원세개가 이 곳으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왔으며, 대원군이 중국으로 끌려갈 때도 이 곳에서 배를 탄 역사의 현장으로 송산면 유일의 서해안 포구였다.
○ 마산포 선창(馬山浦 船艙) : 마산포 서쪽에 있는 나루터로 전에는 장삿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 마루게〔월현동(月峴洞)〕 : 마루게란 고어로 달을 가리키는 말이며 마을 지형이 달과 같이 생겼다 하여 다루게 또는 월현동(月峴洞)이라 부른다.
○ 소포막(小浦幕)〔작은 개매기〕 : 개매기의 작은 마을이다.
○ 어도(漁島)〔어섬, 엇섬〕 : 마산포 서북쪽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고기를 많이 잡는 섬이라고 하여 엇섬으로 부른다고 한다.
○ 이포동(二浦洞) : 고포리에 있는 마을로 고려 시대에 이포부곡(梨浦部曲)이 있었다.
○ 큰 개매기〔대포막(大浦幕)〕 : 개매기의 큰 마을이다.
○ 큰머리〔큰모리, 대두리(大頭里)〕 : 마산포 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뒤의 산이 병풍처럼 이어져 내려와 바다와 맞붙은 마을이다. 산의 머리부분이 크다 하여 큰머리 또는 대두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3. 독지리(禿旨里)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인데 1914년 독내(돌내)와 문지동을 병합하여 독지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사진-60. 형도 원경]
○ 독내〔돌내, 돌천(乭川), 석천동(石川洞)〕 : 문마루 동쪽에 있는 마을로 돌이 많은 내가 있었다고 한다.
○ 목섬〔항도(項島)〕 : 문마루 서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목처럼 생겼다고 한다.
○ 문마루〔문지(文旨), 문지동(文旨洞)〕 : 독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마을 앞산에 서당을 짓고 선비들이 주야로 글을 읽었다 하여 문지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 저울이〔형도(衡島)〕 : 목섬 북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저울추처럼 생겼다.
4. 마산리(馬山里)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으로 이 지역을 통틀어 마산포라 하였는데 1914년 원마산포는 고포리라 하고 장문, 갓마루, 도말을 병합하여 마산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 갓마루〔관현동(冠峴洞)〕 : 마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지형이 갓과 같으며 또한 달과도 같다 하여 월현(月峴), 또는 관현동(冠峴洞)이라고도 한다.
○ 도말〔도정동(道井洞)〕 : 갓마루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경치가 좋고 물이 깨끗하여 선비들이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이 곳을 많이 찾았다 하여 도정동(道井洞) 또는 도말(道村)로 불리었다고 한다.
○ 장문(長門)〔장문동(長門洞)〕 : 갓마루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서신면 전곡리 앞 바다에서 이 곳까지 갯골이 있었는데 유난히 좁고 깊었으며 이 곳에 포구가 있어 인천 및 충청도 등의 배들이 많이 출입하였다 하여 장문이라고 부른다 한다.
5. 봉가리(鳳歌里)〔봉가말, 봉가동〕
본래 남양군 수산면의 지역으로 매봉산(鷹峯山) 밑에 울창한 노송이 많으며 매(鷹) 앞에 각종 새들이 공포에 쌓여 우는 것을 새들이 노래한다 하여 봉가말 또는 봉가동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봉가리로 부르고 있다. 1914년 반율, 지끼미를 병합하여 봉가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과 편입되었다.
○ 기끼미〔지끼미〕 : 반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이 곳에 목화를 많이 심었으며 이 목화를 주민들이 물레를 이용하여 실을 뽑아 직물을 많이 생산하였다 하여 지기미 또는 직낌이라 부르게 되었다.
○ 반곡동(盤谷洞)〔반율(盤栗)〕 : 봉가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 밤나무가 많아 밤이 많이 생산되었다 하여 반율(盤栗)이라 부르게 되었다.
○ 중간리(中間里)〔중간말〕 : 반율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6. 사강리(沙江里)

[사진-61. 사강장 원 장터 ]
본래 남양군 수산면의 지역으로서 예부터 농산물의 집산지일 뿐만 아니라 전에는 이 곳까지 조수가 드나들어서 강처럼 되었으며 유난히 모래가 많았다고 해서 사강이라 하였는데, 1914년 지구말, 정도리를 병합하여 사강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송산면의 중심지가 되어 면사무소, 경찰지서, 우체국, 학교, 시장들이 위치해 있다.
○ 경교(京橋)〔정도, 정도리〕 : 사강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바깥사강〔외사강(外沙江)〕 : 사강의 바깥쪽 마을로 산등성이를 사이에 두고 마을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서 사강 밖에 생긴 마을이라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 사강시장〔구시장〕 : 사강리에 있는 시장이다.
○ 신외동(新外洞) : 바깥사강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마을이 남북으로 산등성이 사이로 있고, 새로 사강 밖에 생긴 마을이라 하여 안사강과 바깥사강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 씨름터 : 사강리에 있는 씨름터로 현재 송산중학교가 된다.
○ 아랫정도〔하경교(下京橋)〕 : 정도 아래쪽의 마을이다.
○ 안사강〔내사강(內沙江)〕 : 사강의 안쪽마을이다. 사강지역이 넓고 촌락이 군데군데 있는데 깊숙이 입구에 있기 때문에 안사강리라 부른다.
○ 윗정도〔상경교(上京橋)〕 : 정도 위쪽의 마을이다.
○ 저구동(渚鳩洞)〔저구말〕 : 사강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현 사강시장 내에 위치한 마을로 전에는 갯물이 드나들었고 그 때마다 바다 비둘기가 모여들었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 정도〔정도리, 경교〕 : 사강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반상이 분명하여 양반에게 불손한 상민은 볼기를 맞고 정(경)을 쳤다고 하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7. 삼존리(三尊里)〔삼존골, 삼존, 삼전동, 문산, 문산동〕
본래 남양군 수산면의 지역으로 이 곳 출신으로 조선 광해군 때의 세도대신 문창부원군(文昌府院君) 류희분(柳希奮)이 그 아우 희발(希發), 희량(希亮)과 함께 벼슬이 높고 행동이 출중하여 가문이 크게 존경을 받았으므로 삼존골, 삼존, 삼존동 또는 문산, 문산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개목골(개밋골) 개묵골, 고잔, 물미를 병합하여 삼존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 간단말 : 삼존리에 있는 마을이다.
○ 갈방죽 : 물미 북쪽에 있는 못으로 갈(갈대)이 무성하였다고 한다.
○ 개목골〔개밋골〕 : 문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고잔(古棧) : 물미 동쪽에 있는 마을로 곶으로 되어 있다.
○ 남염(南鹽)〔신흥동(新興洞)〕 : 물미 동쪽에 새로 된 마을로 한국전쟁 후 유랑민들이 집단적으로 천연염전을 개척한 마을이다.
○ 등대 : 삼존리에 있는 마을이다.
○ 문산(汶山)〔汶山洞〕 : 상존리에 있는 마을로 예부터 서당에서 글공부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데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 물뫼〔물미, 수산동(水山洞)〕 : 개목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광해군 때 영의정 유희분 등이 이 곳에 별장을 짓고 노후를 즐겼다 하며 삼면이 바다이고 한 면이 산이어서 물미 또는 수산동이라 한다.
○ 장승백이 : 옛날 그 곳에 장승이 서있었다는 데서 유래 되었다.
8. 신천리(新天里)
본래 남양군 세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신천동(느루지)과 천등동을 병합하여 신천리라고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천등산(天燈山) 기슭에 위치한 부락으로 바다를 막고 염전을 일구는 동안 생긴 부락이며 새로 생긴 천등산 밑의 마을이라 하여 신천리라 부르게 되었다.
○ 구억(九億)말〔구역말, 구억촌, 천등굴〕 : 신촌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청등산 동쪽 밑이 된다. 주민들이 살던 옛터에 다시 마을이 들어섰다는 뜻에서 구역촌(舊亦村)으로 불려진다.
○ 느루지〔신촌동(新村洞)〕 : 구억말 서북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천등산 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인근 바다를 막아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9. 쌍정리(雙井里)

[사진-62. 쌍정리 마을 전경]
본래 남양군 세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대정동, 흰돌개, 덕우물, 복정동, 신촌동을 병합하여 대정과 복정의 두 이름을 따서 쌍정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 대정(大井)〔한우물〕 : 쌍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큰 우물이 있어 식수는 물론 농업용수로도 이용되었다.
○ 덕우물〔덕정동(德井洞)〕 : 새말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형이 새우등과 같이 생겨 물이 없는 마을이었으나, 새우등 너머에 큰 우물을 판 뒤부터 물을 풍족하게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 매위〔매봉동, 응봉동(鷹峯洞), 매머리〕 : 마을의 지형이 매의 머리형을 하고 있다 하여 매봉동이라 하며 매머리 또는 매위라고도 부르고 있다.
○ 백석현(白石峴)〔흰돌재, 흔들재〕 : 복우물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흰 돌이 많았다고 한다.
○ 복우물〔복정동(福井洞), 석정동(石井洞)〕 : 한우물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돌로 된 우물이 있었다. 동네 가운데 우물이 있고 부락민들이 예로부터 이 물을 이용하였으며, 복이 있는 우물이라 하여 복정(福井) 또는 석정동(石井洞)이라 하였다.
○ 새말〔신촌(新村)〕 : 한우물 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한국전쟁 후의 옹진군 및 연백군 피난민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여 신촌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0. 용포리(龍浦里)
본래 남양군 세곶면의 지역인데 1914년 당미, 용수동, 각굴, 고포 등을 병합하여 용수와 고포의 이름을 따서 용포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대원군의 기독교 박해에도 불구하고 감시를 벗어나 기독교 전파가 많이 된 지역으로 옛날에 조수가 드나들 당시 포구에서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포리라 부르게 되었다.
○ 각굴〔각골〕 : 용숫굴 동쪽에 있는 마을로 소의 뿔처럼 생겼다고 한다. 또는 가장자리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 고포(羔浦)〔고포동(羔浦洞), 당미(唐味), 당산, 양개〕 : 각골 동쪽 갯가에 있는 마을로 ① 양쪽으로 개가 있었다고도 하고 ② 신당이 있었다고도 한다.
○ 됫섬〔승도(升島)〕 : 작은 당미 동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됫박처럼 작은 섬’이란 뜻에서 ‘됫섬’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 용수동〔용수동(龍水洞), 용숫굴〕 : 용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옛날 조수가 드나들 때 포구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해서 ‘용숫골 → 용수동’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또한 고어로 ‘농’이란 용을 일컷는 말로서 용이 포구에서 승천했다는 데서 ‘농말’이란 이름도 유래되었다고 한다.
○ 작은당미(唐味) : 당미의 작은 마을이다.
○ 큰 당미 : 당미의 큰 마을로 김녕김씨 대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11. 육일리(六一里)
본래 남양군 수산면의 지역인데 1914년 육도리, 북일동, 창말, 골말, 세경주를 병합하여 육도와 북일의 이름을 따서 육일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 골말 : 육일리에 있는 마을이다.
○ 북일동(北一洞) : 창말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 불당골 : 조그만 절터가 있어 불당골이라 전해지고 있다.
○ 두일〔뒤일〕 : 마을을 두른 구봉산(九峯山) 골자기에 옛 성터와 봉수대가 남아있으며 주민들은 매년 이 곳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 세경주 : 육일리에 있는 마을이다.
○ 송안말〔송내동(松內洞)〕 : 구봉산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주위에 우거진 소나무가 둘러싼 마을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 육교(六校)〔육교동(六校洞), 육도리〕 : 육도리산 기슭에 위치한 육일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조선 때 6교리(校理)가 났다고 한다.
○ 창말〔창촌(倉村)〕 : 북일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서신 송산 지역의 곡물을 저장하던 사창이 있었다고 한다.
12. 중송리(中松里)〔중송골, 중성동〕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으로서 예부터 마을 주변에 노송이 우거져 있어 그 한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라고 하여 중송골 또는 중성동이라고 하였다. 1914년 주송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사강 아지미고개 너머에 위치해 있다.
○ 뚝미 : 옛날 바닷물이 이 곳까지 들어왔었으나 제방을 쌓아 농경지를 만든 이후 ‘뚝미’ 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 뒷골 : 솔뫼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뒤쪽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에서, 또는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운 것과 비슷하고, 특히 이 마을이 소의 꼬리부분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뒷꼬리 → 뒷골’로 전유되어 불려지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 묫골 : 솔뫼 북쪽에 있는 마을로 묘자리가 많다고 한다.
○ 솔뫼〔송산동(松山洞)〕 : 중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옛부터 소나무가 많고 노송이 우거져 ‘솔뫼 → 솔미’로 불러졌다고 한다.
13. 지화리(芝花里)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인데 삼국시대부터 당항진(唐項鎭)포구와 군진이 있던 곳이다. 1914년 거지동, 매화동, 방죽머리, 채경동, 화량동을 병합하여 거지와 화량의 이름을 따서 지화리라 하여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 거지(居芝)〔거지동〕 : 지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조선말에는 ‘거지동’으로 표기했으며 현재도 지화리에서 중심마을을 이루고 있다.
○ 남경성〔화랑진터〕 : 와룡산 남쪽 화령 둘레에 있는 화량진의 터이다. 돌로 쌓은 성이 있었는데 둘레 2,905자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수군첨절제사영(水軍僉節制使營)이 있었는데 1485년(성종 16)에 혁파하고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었었다.
○ 매화동(梅花洞)〔매화정(梅花亭)〕 : 지화리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형국이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이라고 하여 ‘매화동’ 또는‘매쟁이’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방죽머리 : 양정염전 북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방죽이 있었다.
○ 양정염전(養正鹽田) : 거지 동쪽에 있는 염전으로 1953년 양정중·고등학교 재단에서 만들었다. 양정염전 옆에 마을이 있었다.
○ 채경〔채경동(彩鏡洞), 채화동彩花洞)〕 : 매화동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와룡산(臥龍山) 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봄에는 진달래를 비롯하여 여러 꽃들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었다는 데서 ‘채경동’, ‘채화동’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 화령(花嶺) : 화령진터에 있는 마을로 화량진이라고도 한다. 삼국시대부터 군진이 설치되고 포구로서 중국과 왕래하던 사신들을 영접하던 출입문터가 지금도 남아있다. 와룡산 남쪽 화령 둘레에는 화량진(花梁鎭, 南京城)터와 돌로 쌓은 성이 남아있다.
14. 천등리(天燈里)〔천등굴〕
본래 남양군 송산면의 지역으로 등잔 모양의 천등산 밑이 되므로 천등굴 또는 천등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둥굴, 서신리, 새말을 병합하여 천등리라 해서 수원군 송산면에 편입되었다.

[사진-63. 천등 2리 동편 마을 전경 ]
○ 동편(東便)말 : 천등굴 동편에 있는 마을이다.
○ 둥골〔둥굴, 등곡동(燈谷洞)〕 : 천등굴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뒷산이 나무 등잔과 같다하여 등곡(燈谷)이라 부른다.
○ 새말〔신촌동(新村洞)〕 : 천등굴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천동산 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말(新村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서사리 : 동굴 동쪽에 있는 마을로 뒤에 둘러선 산이 서쪽으로 향한 모양이며 산세가 사자형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 안말 : 천둥굴의 안쪽 마을 천둥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아랫말’로 불리다가 이후 ‘안말’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홍정승가묘(洪政丞家墓) : 천등리에 있는 영의정 홍섬(洪暹)의 조상 무덤이 여러 묘를 잇대어 있었는데 왕씨가 묘 사이에 밀장한 뒤 홍씨의 묘를 무너뜨려 버리고 비석을 없애 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 수 십년 후에 영의정 홍섬이 그 묘를 찾으려고 천둥리에 와서 물으나 아무 흔적조차 알 길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있다가 추레한 옷차림으로 다시 가서 주막에 묵으면서 여러 달을 두고 수소문 하였으나 알 길이 없던 차에 하루는 뜻 밖에 어린 아이가 동무를 부르면서 “홍산골로 나무하러 가자” 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아 그 애들의 뒤를 몰래 밟아가서 자세히 살피었다. 흔적은 없으나 좌향이 분명하므로 남양부사에게 연락하여 남양부사가 수십명의 군정을 데리고 와서 확인한 뒤 묘를 찾아 성분하니 왕씨의 묘가 홍씨의 묘 사이사이에 끼어 있었다. 남양부사가 왕씨의 묘를 모두 없애려고 서둘렀으나 홍 정승이 말리어 그대로 성분을 하고 보니 홍씨의 묘와 왕씨의 묘가 서로 연하며 앞에 절할 자리가 없게 되었다. 그대로 두고 왕씨들을 찾으니 왕씨는 모두 놀라 달아났으므로 여러 방면으로 겨우 찾아서 홍정승이 이르기를 “전에야 어떻게 되었든지 이제 산소가 한 데 잇대어 있으나 현상대로 둘 터이니, 우리가 성묘할 때는 왕씨의 묘를 밟고, 왕씨가 성묘할 때는 또한 우리 산소를 밟고 절하여 동산소와 의를 두텁게 지키자”고 선언하였다. 왕씨들이 그제야 마음을 놓고 같이 감읍하여 그 의를 지금까지 지켜온다고 한다.
15. 칠곡리(漆谷里)〔옻골, 칠곡〕

[사진-64. 칠곡리마을 전경 ]
본래 남양군 서여제면의 지역으로서 구봉산(九峯山)의 9개 봉우리 가운데 7개의 봉우리가 이 마을 쪽을 향해있다고 하여 칠곡(七谷)으로 불려졌다. 그런데 마을뒷산에는 옻나무가 많았으므로 옻골 또는 칠(七)자를 칠(漆)자로 바꿔 칠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칠곡리라 해서 수원군 서신면에 편입되었다.
○ 양지말〔양지촌(陽地村)〕 : 마을의 형태가 야산을 등지고 정남향으로 위치, 온종일 햇볕이 들고 따뜻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양지말’또는 ‘양지촌’으로 불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