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학연구소 연구위원
| 부서 | 성명 | 소속 및 직위 | 담당 분야 |
|---|---|---|---|
| 화성학연구소 | 심일종 소장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 연구소 운영 총괄 |
| 정찬모 부소장 | 화성시지역학연구소장, 화성문화원 이사 | 지역 실무위원 총괄 | |
| 한동민 위원 | 화성시독립기념관 관장 | 지역학·독립운동사 분야 | |
| 김덕묵 위원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교수 | 민속기록 분야 | |
| 최종성 위원 |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 역사·종교 분야 | |
| 이관준 위원 | 건국대학교 대학원 교수 | 문화관광콘텐츠 분야 | |
| 박재형 위원 | 서울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사 | 학술·향토문화 분야 |
[여지도서 (輿地圖書)』의 남양부 지도]
카테고리
화성의 지리변화
작성자
화성문화원
작성일
2025-04-11
조회
235

17세기 후반 ~ 18세기 초 숙종대에 여러 번 지리지 편찬 의논이 제기되었으나 수 차례에 걸친 환국 등 복잡한 정치 상황 때문에 완성되지 못하였다. 이때 완수하지 못한 지리지 편찬 사업은 18세기 중엽 영조대에 실현되었다. 영조대에는 ‘여지승람’의 증보에서 한 걸음 나아가 새로 국가에서 각 읍의 읍지를 종합하고 여러 차례 개수하였으니, 이 책이 여지도서 55책이다.『여지도서』의「호구」등 항목은 대부분 ‘기묘장적(己卯帳籍)’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1759년 이후 즉 1760년을 전후한 시기에 편찬된 읍지들을 모았음을 보여 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비하여『여지도서』의 내용 체계는 사회, 경제, 행정적인 내용이 매우 강화된 것이었다. 채색지도가 각 군현 읍지의 앞에 반드시 수록되고, 방리, 도로, 제언, 교량, 제언, 전결〔旱田, 水田], 부세[進貢, 田稅, 大同, 均稅〕, 군병 등의 항목이 새로 설정되어 지역의 사회 경제적인 내용이 매우 풍부하게 수록되었다. 이러한 체제는 16세기 후반 이래 활성화되었던 새로운 읍지 편찬의 경향을 정리하고 종합한 것으로서 18세기 읍지의 종합적 성격을 대표하고 있다. 군현의 역사와 행정제도의 변화에 관한 내용인「건치연혁」이 일반적으로 읍지의 첫머리에 기록되었으나, 『여지도서』에는「방리(坊里)」조를 가장 첫머리에 두고 면리(面里) 별로 명칭, 위치, 호수, 남여인구수를 기록하여 매우 자세하게 군현의 하부 행정 단위와 지역 규모를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리 단위 인구 기록은 지방 실정을 파악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는 국가 행정력의 강화와 함께 리(里)가 국가 행정의 하부 단위로 파악될 필요성이 있을 정도로 촌락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도로」조 역시「건치연혁」조 보다 앞에 위치하였을 뿐 아니라 이 시기에 신설된 항목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도로의 크기에 따라 대로, 중로, 소로로 구분하여 군현 내의 도로망과 인접 지역과의 거리, 경계 표지물을 자세히 기록하여, 도로가 매우 중시되고 있던 당시의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는 당시 상업의 발달과 더불어 도로의 중요성이 커지고, 지역 간의 교류가 증대되면서 지역 간 및 지역 내의 구체적인 유통망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화성군의 읍지 가운데 처음으로「도로」조가 수록되어, 동쪽으로 수원부 서부에서 오는 길, 서쪽으로 대부도 가는 길, 북쪽으로 수원 어량천면 가는 길 등을 대로(大路)로, 남쪽으로 수원 모전면 가는 길을 소로(小路)로 기록해 놓았다.
또한 조세 수취와 관련된「진공」,「조적」,「전세」,「대동」,「균세」,「봉름」 등이 각각 독립된 항목으로 설정되는 변화가 보인다. 조세량의 정확한 파악과 수납은 국가의 지방 통치 장악 및 중앙 재정에 긴요한 것이었다. 읍지에서는 이에 관한 기록의 비중이 18세기 중엽 이후 점차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밖에도 군사적인 측면이 강화되었으며, 「제언」 조에도 저수지의 이름, 위치, 둘레, 길이와 너비, 높이, 수심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물의 확보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있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각 군현 읍지의 첫머리에 채색지도가 안내지도 역할을 하도록 첨부된 점이다. 읍지의 내용을 지도에 도시함으로써 읍지의 내용에 정확성이 증가되고, 지도의 이용으로 당시 사람들의 공간적 인식에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편찬된 대부분의 읍지에 지도가 수록되는 것도 지도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읍지에 포함된 지도들은 본질적으로는 읍지에 문자로 표현된 내용들을 시각적, 공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자, 동시에 한 권의 책을 한 도면에 압축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글자로 표현하여 인지하기 어려운 내용물을 담아 낼 수 있는 최종 목표물이 되기도 한다.
『여지도서』에 수록된 남양부읍지(지도-9)의 지도는 면명이 기록되지 않고, 산, 도로, 봉수 등이 표현되었으며, 특히 도서가 크게 그려져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지도는 동시대에 제작된 군현지도집의 남양 지도와 구도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이후에 편찬된 18~19세기의 남양부의 읍지들에 수록된 지도들은『여지도서』의 지도를 바탕으로 지도를 만들었으며,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