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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개관 제2절 문헌자료로 보는 화성과 수원의 지명

카테고리
화성의 지명유래
작성자
화성문화원
작성일
2025-04-11
조회
46
각종 지명을 수록해 놓은 문헌자료를 지리지(地理志)라 부른다. 지리지는 국가에서 주관한 관찬(官撰)과 개인이 주관한 사찬(私撰)으로 구분되나 그 범위가 전국적일 때는 역시 관찬 지리지에 더 신빙성이 주어진다. 관찬 지리지 중 가장 역사가 오랜 것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삼국사기 총 50권 중 제 34권부터 37권까지 4권에 들어가 있는데 여기서 34권~36권은 신라, 37권은 고구려·백제의 지명이 수록되어 있어 수원, 화성 지역은 이 37권에 해당한다.

 

『고려사(高麗史)』 『 지리지(地理志)』는 고려사 137권 중 56권~58권의 3권으로 되어 있는 바 고려가 건국된 918년부터 멸망한 1392년까지의 500여 년 간의 지명을 담고 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인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는 1432(세종 14)에 편찬된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의 내용 중 그 이후에 변동된 사항만을 추가하여 세종실록을 편찬할 때 그 부록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이상 세 지리지에 수록된 화성 및 수원 지역의 지명으로는 매홀군(買忽郡)과 당성군(唐城郡), 그리고 상홀군(上忽郡)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 주요 부분만을 초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
水城郡 本 高句麗 買忽郡 景德王改名 今水州
唐恩郡 本 高句麗 唐城郡 景德王改名 今復故, 領縣二 車城縣 本 高句麗 上(一作 車)忽縣
景德王改名 今龍城縣 振威縣 本 高句麗 釜山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買忽 一云 水城
唐城郡 上忽 一云 車忽 釜山縣 一云 松村活達

 
2.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
水州 本 高句麗 買忽郡 新羅 景德王改爲 水城郡… 元宗十二年… 爲水原都護府
後又陞爲水 州牧 忠宣王二年 汰諸牧降 爲水原府… 屬縣七, 安山縣(高句麗 獐項口縣),
永新縣(一云 五朶, 一云 永豊), 雙皐縣, 龍城縣(高句麗 上忽縣 一云 車忽,
爲唐恩郡領屬) 貞松縣, 振威縣 (高句麗 釜山縣(卷第一百四十八) 景德王改名 爲水城郡)
唐城郡 本 高句麗 唐城郡 新羅 景德王改爲 唐恩郡 高麗初復古名 顯宗九年
爲水州屬郡 後來 屬……
3.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

水原都護府 本 高句麗 買忽郡 新羅改爲 水城郡… 屬縣五 雙阜(右六浦), 永新(一號 永豊),
貞松 (右松山部曲), 龍城(上忽縣, 車城, 唐恩郡領), 廣德…
南陽都護府 本 高句麗 唐城縣 新羅改爲 唐恩郡 高麗復古名 顯宗戊午 屬水州
任內後移屬 仁 州……


이상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고려사』나 『세종실록』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기록을 기반으로 하여 약간의 행정구역상의 변동사항만을 추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화성(華城) 및 수원(水原) 지역의 고지명을 사료별, 시대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1. 화성·수원 지역의 고지명 ]



 
고구려 지명 신라 경덕왕 개칭지명 고려지명
『삼국사기』 권35 『삼국사기』권37
1차지명 2차지명 1차지명 2차지명
매홀군(買忽郡) - 매홀(買忽) 수성 수성군(水珹郡) 수주(水州)
당성군(唐城郡) - 당성군(唐城郡) - 당은군(唐恩郡) 당성군(唐城郡)
→남양(南陽)
상홀현(上忽縣) 차홀(車忽) 상홀(上忽) 차홀 차성현(車城縣) 용성현(龍成懸)
 



[사진-2. 서신 왕모대 포구 (2002) ]

 

 
수원(水原)이란 이름의 기원이 된 ‘매홀'(買忽)과 남양의 전신인 ‘당골'〔唐城〕은 이들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예전에는 이 지역의 중심 고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곧 매홀(買忽)과 당성(唐城)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가장 역사가 오랜 고을들로서 당성의 경우 그 구역 내에 용성(龍城)과 진위(振威)가 딸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우리가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수원의 매홀(買忽)이나 남양의 당성(唐城)은 모두 지금의 화성시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흔히 ‘수원'이라면 경부선 열차가 통과하는 서울의 남쪽 관문 정도로 혹은 지금까지도 화성(華城)이 잘 보존되어 있는 현재의 수원시 중심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본래의 수원은 현 위치로부터 한참을 서쪽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화성시, 그 중에서도 서해 바닷가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옮겨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수원을 말한다면 지금으로부터 고작 200여 년 전 즉 조선조 정조의 신도시개발의 대 역사에서 비롯되었기에 하는 말이다. 수원이나 남양의 지명유래는 이처럼 내륙이 아닌 바닷가 갯마을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의 지형상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200여 년의 열 배가 넘는 2천여 년 전 그 옛날에는 화성의 서쪽지역은 대부분 바다였을 것이다. 지금도 이 지역은 야트막한 야산으로 이루어져 그 사이로 호수나 연못 같은 물이 많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옛날 바닷물로 출렁거렸을 이 곳에 세월이 흘러 점차 물이 빠져나가면서 작은 섬들은 야산으로 드러나게 되고 좀 더 깊은 지형은 지금처럼 호수나 못으로 남게 되었다. 어느 시기까지는 바닷물이 빠져나가 육지가 형성되면서 온통 ‘물나라'〔水國〕처럼 보였을 이 곳 갯마을 포구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보금자리를 틀고 그 곳이 점차 커져나가면서 오늘의 화성, 또는 수원이란 지명을 만들어내게 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뒤에 다시 설명되겠지만 매홀(買忽)은 고유어 ‘골'로서 물이 많은 물골〔水邑〕과 같은 말로 쓰인 것 같다. 혹은 ‘매'(買)를 산(山)의 뜻으로 보는 이도 있으나 어떻든 ‘물'이란 말은 어두에 올 때는 그 어형을 달리하는 예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물의 뜻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당성(唐城)은 당시 중국 당(唐)나라와의 교류에서 생긴 것으로 처음부터 한자지명으로 붙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당성군에 속했던 용성현(龍城縣)은 상홀(上忽) 또는 차홀(車忽)또는 차성(車城)으로 차자표기된 것으로 당시에는 ‘수리골' 정도로 불리었으리라 생각된다. ‘수리'는 정수리〔頂〕에서 보듯 꼭대기, 으뜸을 뜻하는 고유어로서 이는 주변에서 가장 큰 마을[首邑, 혹은 大邑)을 지칭할 때 쓰는 이름이다. 이들 개개의 지명어원에 대해서는 후술할 것이다.


-출처 화성시사(2006)